다솔사~ 이명산
다솔사 이명산
♣일 시: 2015년 5월 31 일 (5주째 일요일)
♣대 상 산: 북천면 이명산( 570.1m)
♣코 스: 북천역- 계명산- 다람재-- 이명산-- 계봉- 직전마을(북천사)-북천역
이명산
높이 400m이다. 1983년 11월 14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방장산(方丈山) 또는 주산(主山)이라고도 한다. 풍수지리학상으로 봉(鳳)이 우는 형국이라 하여 봉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봉사(栖鳳寺)가 있는 봉암산(鳳巖山)과 마주보고 있어 쌍봉(雙峰)을 이루며, 산자락에 신라 지증왕 때 지은 다솔사(多率寺)가 있다. 가까이 있는 이명산(理明山:570m) 봉우리와 이어지며, 이명산에서 시작된 무고천이 봉명산을 거쳐 흐른다. 고려 때 만든 석굴암인 보안암석굴이 아직도 남아 있어 고고학자와 등산객들이 많이 찾으며, 숲이 울창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삼림욕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또 산 정상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다도해가 내려다 보여 관광객이 많이 온다. 사천공항과 남해고속도로가 가까이에 있어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주요 문화재로는 다솔사대양루(多率寺大陽樓:경상남도유형문화재 83), 다솔사극락전(多率寺極樂殿: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8), 다솔사응진전(多率寺應眞殿: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9), 다솔사봉안암석굴(多率寺奉安庵石窟:경상남도유형문화재 39) 등이 있다.
▲다솔사
변천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봉명산은 이명산이라고도 한다. 사찰이 자리한 일대는 봉명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적 변천]
511년(지증왕 12)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영악사(靈嶽寺)’라 하였고, 636년(선덕여왕 5) 건물 2동을 신축하고 다솔사로 개칭하였다. 676년(문무왕 16) 의상(義湘) 대사가 다시 ‘영봉사(靈鳳寺)’라고 고쳐 부른 뒤, 신라 말기 도선(道詵) 국사가 중건하고 다솔사라고 하였다.
1326년(충숙왕 13) 나옹(懶翁)이 중수하였고, 조선 초기에 영일·효익 등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686년(숙종 12) 복원하였다. 1748년(영조 24) 당우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758년 명부전·사왕문·대양루 등을 중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대양루를 제외하고 1914년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재건한 것이다.
설명
현존하는 당우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 대양루(大陽樓)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8호인 극락전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9호인 응진전, 대웅전·나한전(羅漢殿)·천왕전(天王殿)·요사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대양루는 1749년(영조 25) 건립된 2층 맞배집으로서, 건평 106평의 큰 건물이다. 1658년에 중건하고, 1986년에 수리하였으며, 2000년 1월에 다시 보수를 마쳤다.
1978년 2월 8일에 있었던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改金佛事)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됨에 따라, 이 절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의 석탑을 본뜬 높이 23m, 30평 정도의 성보법당(聖寶法堂)을 탑 안에 설치하여 적멸보궁사리탑(寂滅寶宮舍利塔)을 건립하였다.
이밖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멸이 심한 마애불(磨崖佛)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인 보안암석굴(普安庵石窟), 부도군(浮屠群) 등이 있다.
보안암석굴은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하여지며, 경주 석굴암의 형태와 비슷하다. 석굴 안의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코 부분이 깨어져 있으며,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여 1.3m 내외의 석불좌상 16구가 안치되어 있는데,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도군에는 도명(道明)·낙화(樂華)·성진(聖眞)·풍운(風雲)·세진(洗塵) 등 5인의 부도가 있다.
이 절은 일제 때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金東里)가 『등신불(等身佛)』을 쓴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절 주위에서 재배되는 죽로차(竹露茶)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차이다.